2009년 6월 13일 토요일

옛이야기에 나타난 아랍의 민족성을 논하다

참고서적: Tales from Syria (sunflower books), Tales of thieves and robbers (sunflower books), 노예 앙트라와 처녀 아블라이야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의 램프, 병 속의 지니 그외 다수

분석대상민족: 아랍족

 

제목: 옛이야기에 나타난 민족성 – 아랍

총 원고매수: 10

 

 

 과제의 성격상 한 권에 십여 편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책을 주로 선택하여 탐독하였고 기존에 읽었던 아랍의 유명한 이야기들을 되새겨보았다.  스토리들마다 눈에 띠는 사항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이 아마도 아랍족의 민족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이들을 간추려 열거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인들의 지혜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는 요지. 그리고 비슷한 내용의 스토리들을 무수히 양산해냄으로써 지속적으로 후대에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짙은 인상을 받았다.

 

둘째 과거에 자신을 힘들게했고 인간답게 대우해주지 않았던 인물일지라도 결코 해악으로 보복하지는  않는다는 요지. 외려 자신이 마침내 이룬 부와 정치적 힘을 과시하고 자비를 베풂으로써 상대가 자신의 변화한 위상을 깨닫고 과거를 뉘우치게 만든다는 내용들이 아랍스토리북들의 주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연히 ‘아랍’이라면 [눈에는 눈 귀에는 귀]라는 함무라비법전만 떠올랐던 –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인 - 나에게 이 부분은 상당한 충격이 되기도 했다.

 

셋째  현재진행형의 일들이 제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결국 사람의 운명이란 신의 뜻이므로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에 따라 그 난관의 끝이 어려움으로 변할 수도 복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강한 메시지. 이 부분은 이들의 민족성이기 이전에 이들의 삶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종교- 역시 구복적인 - 를 근간으로 형성된 ‘전아랍의 포괄적 성향’으로 대표될 수도 있겠다.

 

넷째 아랍의 스토리에는 유난히 강도와 도둑이 많이 등장하는 데 이는 저 유명한 [알라딘의 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알다시피 알라딘은 저자거리의 좀도둑 혹은 소매치기였으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은 내놓고 도적임에도 불구하고 손목이 절단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운명의 상 혹은 벌’을 받았을뿐이다. 비록 좀도둑이었지만 천성이 착한 –이 부분을 어떤 시도를 통해서 증명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 알라딘은 마침내 마법의 램프와 공주를 얻고 궁궐에 입성한다. 여기에서 램프는 부이며, 공주는 사랑, 궁궐은 성공이다. 알리바바스토리의 40명씩이나 되는 도적들은 알리바바의 대문에 표식을 새긴 두목을 제외하고는 그리 똑똑하지는 않아서 항아리 안에 앉아 펄펄 끓는 기름세례를 고스란히 받고 죽음의 체벌을 당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았을때 알리바바는 도적들이 훔친 물건들을 ‘다시 훔친 역시 도둑’임이 분명한데에도 아랍은 알리바바의 민중처벌 대신에 ‘가난한 백성들의 재산을 탈취한 대규모 도적집단’ –  시대를 막론하고 백성의 혈세를 노리는 거대한 흡혈세력을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한 - 40인에게 죽음의 벌을 내리는 쪽을 택하여 스스로 분노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민중의 심정을 대변하는 알리바바는 자신의 손에는 단 한 방울의 피도 묻히지 않는다. 도적을 죽인 것은 여자노예의 지기와 펄펄 끓는 기름이었을뿐이니 그 얼마나 깨끗하고 안전한 – 살인을 저지른 죄의식으로부터의 탈출에서 느낄 수 있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 방법인가 말이다. 한 마디로 권선징악은 마땅히 있어야하되 그것이 사람의 손이 아니라 운명으로 대변되는 ‘신의 뜻’이어야 한다는 요지이다. 아랍은 ‘자신들이 안전한’ 체벌을 선호하는 것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앞서 언급한 알리바바의 영특한 여자노예나 오페라에까지 등장하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세라자드’왕비는 대단히 예외적인 존재로서 아랍스토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보다는’ 지혜가 부족한 아내로 혹은  자식에게 눈이 어두워 버릇을 망치는 어머니 그런가하면 한낱 여우에게까지 조롱당하는 아둔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심지어 알라딘의 공주는 그것이 약간 낡았다고해서 남편이 애지중지해 마지않는 램프를 덥썩 집어다 새것으로 바꾸는 우를 범해 독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지 않았던가. 또한 아랍의 유명한 실화 중에는 이러한 것도 있다. 아브라함이 큰아들 이스마일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스마일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아내에 대하여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 이에 아브라함은 며느리(=여자)를 계단에 비유하여 간단명료한 조언을 주었다. “네 계단을 바꾸라”는. 아랍에서 십여 년을 살고 있는 필자가 보기에도 아랍은 절대적인 남성들의 세계이다. 그 안에서 사랑을 위해 감히  신분을 버린 용감한 처녀 아블라(‘노예 앙트르와 처녀 아블라이야기’에 등장)같은 ‘반딧불처럼 빛을 발하는’ 여인들의 등장은 아랍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한 구석에서 힘없이 소리를 내는 민초들의 또다른  목소리일수도 있기에 결국은 가슴 싸아한 반가움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여우의 데스크]





댓글 없음:

댓글 쓰기